본문 바로가기
수학자 이야기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by 마늘빵12 2023. 8. 27.

히파티아(Hypatia, 350년 ~ 415년)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인류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 과학자입니다. 지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으로 존경을 받았고 철학과 수학을 강의하기도 했으나 이교의 선포자라 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참살당하였습니다. 그녀 이후로 수학사에 여성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데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히파티아의 생애와 일화

히파티아는 370년경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히파티아의 아버지 테온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습니다. 또한 무제이움(알렉산드리아의 교육기관)의 교사였습니다. 테온은 히파티아의 교육에 매진했습니다. 달리기, 말타기, 걷기, 노 젓기, 수영을 통해 신체적 능력을 길렀고 이성적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인의 필수 과목인 웅변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히파티아는 어린 나이에도 훌륭한 교사로 명성을 얻고 학생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외모 또한 수려해서 많은 남성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서 줄을 섰다고 합니다. 이에 히파티아는 '나는 진리와 결혼했습니다'라고 말하며 거절하고 자유롭게 살면서 책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일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천문학자인 아버지 테온의 영향을 받아 유능한 과학자이기도 했던 히파티아는 천체 관측기구와 액체비중계의 설계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학자로서의 태도와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서 인기가 높고 추앙받았던 히파티아였지만 그 무렵의 시대상황은 히파티아에게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철학과 기독교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과학적이고 이교적인 신플라톤주의의 대표자인 히파티아 같은 철학자는 기독교인들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녀의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자신들의 종교적 가르침에 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녀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히파티아는 광신도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녀는 이교도 관습에 관심이 없었고 기독교를 숭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종교중립적 입장을 취했지만 모함을 받아 종교 전쟁 혹은 정치적인 전쟁의 재물로 바쳐진 것입니다. 이 안타까운 사건 이후 많은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를 떠나게 되었고 고대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파티아의 수학 이론과 업적

히파티아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섬세하게 쓴 수학 해설서입니다. 그 시대의 수학책 역시 딱딱함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히파티아는 일부 내용의 설명 방법을 바꿔보기도 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등 새롭게 발견된 내용을 추가하여 해설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학생들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내다보고 쓴 이 주석서는 후세에 높이 인정받아 수천 년 동안 교과서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디오판토스의 산술에 대한 주석입니다. 디오판토스의 대수는 주로 일차, 이차방정식을 다루고 있는데 히파티아가 단 주석은 몇 가지의 다른 풀이과정과 자신이 최초로 시도한 상당수의 새로운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수학자 아폴로니우스의 「원추곡선론」의 주석에는

타원과 포물선, 쌍곡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개의 원뿔과 한 평면이 만나서 타원, 포물선, 쌍곡선 모양의 절단면이 만들어집니다. 이 원뿔곡선에 대한 연구는 당시에 실생활에 이용할 방법이 없어서 답보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원뿔 곡선 이론은 이후 과학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타원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고 포물선은 위성수신의 안테나, 대포의 사정거리 측정 등의 연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자동차의 와이퍼는 쌍곡선의 성질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히파티아는 수학, 천문학과 관련된 저술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쉽게도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자료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15세기 경 바티칸 도서관에서 [디오판토스의 천문학적 계산에 대하여]의 일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디오판토스의 대수는 1, 2차 방정식을 다루었는데 히파티아의 몇 가지 다른 풀이 방법과 상당수의 새로운 문제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또한 디오판토스의 책을 대중화시킨 [아폴로니우스이 원추곡선에 관하여]라는 책과 [알마게스트에 대한 해설서]도 집필했습니다. [알마게스트]는 오늘날에도 유명한 천문학 저서로 천동설을 주장한 포톨레마이오스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히파티아의 책은 대부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히파티아의 영향과 의의 

히파티아는 많은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원뿔곡선은 천체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였고 후대의 연구자들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히파티아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수학, 과학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녀의 업적과 용기 있는 삶은 현대 여성 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여성들이 수학, 과학은 물론 사회의 여성들의 활약을 장려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히파티아는 편협한 종교의 공격을 받아 피우지 못한 사상과 여성의 자유를 자신의 죽음을 발판으로 되살리게 됩니다. 근대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재조명되기 시작한 히파티아의 삶은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며 탁원한 지성을 갖춘 여성'으로 인정받았고 페미니스트 철학계에서도 히파티아라는 이름이 다양한 방식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히파티아를 좀 더 알고 싶다면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 「아고라」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