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슈바르츠(Laurent Schwartz, 1915년 ~ 2002년)는 디스트리뷰션 이론을 개척하여 20세기 해석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식민지 인권 상황 개선과 전쟁의 종결을 외친 수학자입니다. 로랑 슈바르츠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견디다
로랑 슈바르츠는 프랑스 파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기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언어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고교시절에는 라티어 전국경시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였습니다. 음악적 소양은 물론이고 식물과 동물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평생 동안 나비 수집을 취미로 삼았습니다. 슈바르츠의 방대한 나비 수집물은 현재 프랑스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가 처음 발견한 덕분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는 나비 종도 여러 개 있습니다. 그는 고전학자와 수학자의 길 중에서 고민하다가 기하학에 매력을 느껴 수학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유대인은 슈바르트는 나치 치하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실제로 그의 동료들 중에는 체포된 뒤 연락이 두절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로랑-마리 셀리마르땡'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대학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다행히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발각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는 평생 동안 전체주의에 대한 깊은 혐오를 신념처럼 지니게 되었습니다.
슈바르츠는 트로츠키의 사회주의에 심취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 치하 소비에드 연방에서의 전체주의 경향과 열악한 인권 상황에 분노하여 전향하였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외국 여행에 제약을 받았는데 특히 미국에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1950년 미국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받는 과정에서도 주최 측의 탄원과 수학계의 노력으로 겨우 참석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권과 반전을 외치다
1950년대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알제리에서는 고문과 테러가 횡행하며 공포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슈바르츠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알제리 출신 대학원생 모리스 오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어느 날 알제리에서 체포된 뒤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실은 당시 오뎅은 알제리의 인권 상황 개선과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다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다 사망한 것으로 사람들은 이를 '오뎅 사건'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뎅의 죽음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청하는 여러 탄원은 모두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이 오뎅 사건을 계기로 슈바르츠는 식민지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슈바르츠는 프랑스 내에 오뎅 위원회를 설립하여 진상 조사 요구를 계속하는 한편 오뎅에게 사후 박사 학위 수여를 추진하여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이 일은 프랑스 식민지 정책의 대대적 수정을 촉구하는 사회 운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960년에 슈바르츠는 샤르트르, 보부아르 등 당시의 프랑스 지식인들과 함께 '121인 선언'을 발표하여 프랑스의 양심에 호소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 내 극우파가 지식인들을 협박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샤르트르의 자택이 공경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슈바르츠의 아파트가 폭파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슈바르츠의 아들이 납치되어 억류당하는 슬픔을 겪기도 합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해임되기도 하지만 국제적인 구명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복직합니다.
그리고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함께 베트남의 인권 상황과 전쟁 종결을 위해 협력하며 공동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비극적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중재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슈바르츠는 베트남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미국의 베트남 전쟁,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했습니다.
디스트리뷰션 이론을 창안하다
양자 역학 초기 발전 단계에서부터 물리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던 디랙 델타 함수는 수학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함수였습니다. 디랙 델타 함수는 X=0일 때만 그 값이 존재하고 그 외에서는 0의 값을 가지며 그 시점에 대해 적분한 결과가 1이 되는 함수로 물리학자들에겐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지만 수학적으로는 연속도 아니고 함수조차도 아니어서 수학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론이었습니다. 슈바르츠는 디랙 델타 함수를 포함하는 새로운 수학적인 대상을 도입해 볼 생각을 했는데 이를 '디스트리뷰션'이라고 불렀습니다. 흔히 '일반화된 함수'라고도 불리는데 그는 여기에 엄밀한 수학적 구조를 부여하고 다루는 데 성공합니다.

슈바르츠의 이론은 해석학의 편미분 방정식 이론에 새로운 장을 열었고 물리학이나 공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1950년에 프랑인으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수학 대중화에 앞장서다
슈바르츠는 특유의 명강으로 유명하여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곤 합니다. 전무적인 수학 연구에 관한 강의에서도 그랬지만 가르침의 즐거움을 설파하여 교육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슈바르츠의 대중 강연에는 수많은 청중이 운집하여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수학이 무슨 효용이 있냐고요? 수학 없이는 물리학을 할 수가 없어요. 물리학 덕분에 냉장고를 만들 수 있고요. 냉장고에는 바닷가재를 보관할 수 있는데 수학자는 그걸 먹고 수학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물리학에 도움이 되고요. 덕분에 냉장고를 만들 수 있고 그래서 바닷가재···
이 말은 여러 곳에서 인용된 그의 대중 강연 내용 중 일부입니다. 수학 때문에 과학이 발전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인류의 삶이 개선된다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한 것입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통하던 슈바르츠의 재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슈바르츠의 영향과 의의
로랑 슈바르츠는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프랑스 지성의 상징으로서 존경받는 석학입니다. 특유의 지적 활동과 날카로운 사회 참여를 꾸준히 하였습니다. 특히 함수의 개념을 일반화한 '디스트리뷰션 이론'을 개척하여 20세기 해석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양자역학 등 물리하과 공학의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또한 알제리나 베트남 등의 프랑스 식민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독립을 지원하며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사회 활동을 펼친 당대의 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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