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에르되시(Paul Erdos, 1913년 ~ 1996년)는 괴짜 수학자로 유명합니다. 수학노트가 담긴 여행용 가방 하나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수학자들과 연구를 함께 한 폴 에르되시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폴 에르되시의 유년기
폴 에르되시는 191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수학교사였고 누나가 둘 있었지만 모두 어렸을 때 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외동으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수학적 재능을 보인 에르되시는 3살에 암산으로 세 자릿수 곱셈을 하고 4살에 음수를 계산했으며 21살에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당시 유대인의 대학 입학 제한에도 불구하고 외트뵈시로란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헝가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고 그의 아버지의 두 삼촌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방랑하는 수학자
그 후 에르되시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 무렵부터 정착이 아닌 수학자들과의 토론과 연구를 위해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의 별명이 방랑하는 수학자였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수학노트가 담긴 여행용 가방 하나와 옷들이 들어 있는 낡은 플라스틱 가방을 들고 60여 년 동안 수학자들과 토론하기 위해 4대륙을 여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친구 및 수학 공동 연구자들의 현관에 불쑥 나타나 며칠을 묵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유명했고 새벽 5시에 쾌활한 얼굴로 'My brain is open'이란 말과 함께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에르되시는 그저 커피 한 잔과 수학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만 주어지면 행복해하며 관심 있는 수학을 연구하다가 논문이 완성되면 다른 수학자를 찾아 떠났습니다.
에르되시의 수
에르되시는 순진하고 아이 같은 독특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어떤 직장에서도 오래 일하지 않고 수시로 각지를 떠돌아다녔는데 그의 명성과 천재성으로 어느 대학에서든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로 하는 수학자가 있다면 어제든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눴으며 공동연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공동연구를 한 수학자가 자그마치 511명이나 됩니다. 이로 인해 '에르되시 수'라는 이론이 생겼습니다. 에르되시의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에르되시 자신의 에르되시 수는 0이다.
2. 에르되시와 공저를 한 511명의 에르되시 수는 1이다.
3. 에르되시와 공저를 하지 않았지만 에르되시의 공저자들과 공저를 한 수학자들은 에르되시 수 2이다.
에르되시 수는 대략 15까지 있으며 공저자 네트워크는 현재 따로 관리되고 있다고 합니다. 에르되시 수가 1인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매우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에르되시의 수에서 나온 또 다른 이론이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입니다.

약물 끊기 내기를 하다
에르되시는 온통 수학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 즉, 사회생활 능력은 전무하다시피 해서 은행을 이용하거나 컴퓨터와 팩스도 사용할 줄 몰라 그의 친구들이 에르되시의 강의료를 받아 현금화하거나 논문을 보내고 받는 등의 일을 대신해 주는 등 연구 이외의 생활 부분을 도와줬다고 합니다.
에르되시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에르되시는 심한 우울증으로 암페타민을 처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을 벗어난 이후에도 암페타민을 먹으니 수학을 더 많이 연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암페타민을 계속 복용했습니다. 커피도 무척 좋아해서 암페타민과 카페인으로 인해 하루 네다섯 시간 자고 19시간을 수학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의 친구인 로널드 그레이엄은 에르되시의 약물 중독을 염려하여 에르되시에게 한 달 동안 암페타민을 끊으면 500달러를 주겠다는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에르되시는 한 달을 어렵게 참아내며 내기에 이겼지만 한 달 동안 수학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내기가 끝난 후 다시 암페타민을 복용했다고 합니다.
노트북 하나를 남기다
한 때 에르되시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그 상태에서도 수학 저널이 가득 쌓인 병실에서 영어, 독일어, 헝가리어로 세 그룹의 수학자들과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죽음은 수학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하던 평소의 신념대로 면회 온 수십 명의 수학자들과 토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건강상태를 보였던 1996년에도 조합론, 그래프 이론, 계산 이론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해 강의를 했습니다. 너무 극악했던 건강상태로 인해 그는 강의 도중 잠시 심장마비가 왔음에도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설명해 줄 문제가 두 개가 더 남았으니 사람들에게 기다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평생 수학만을 사랑하던 에르뇌시는 1996년 학회가 열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수학 문제를 풀던 노트북 하나를 전재산으로 남겼습니다.
에르되시의 수학이론과 업적
에르되시는 다양한 수학 분야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양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증명해 내는데 집중했습니다. 1845년 프랑스의 수학자 조제프 베르트랑이 '임의의 자연수 n과 2n 사이에는 항상 한 개의 소수가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추측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2와 4 사이에 3이라는 소수가 존재합니다. 베르트랑의 추측은 1850년에 증명되었지만 에르되시는 18살의 나이에 더 간단하고 우아한 증명을 했습니다.
수많은 수학 분야에 업적을 남긴 에르되시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수학 분야는 조합론, 그래프 이론, 정수론 분야의 문제들이었습니다. 특히 이산수학 분야에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제시하여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력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1,500편에 달하는 논문을 저술했습니다. 대부분이 공동 연구로 에르되시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기보다는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었으며 동료 수학자들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수학적 구조에 대한 통찰이 새로운 이론을 성립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프 이론이란 유한개의 요소로 이루어지는 집합에서 임의의 두 원소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현대사회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래프 이론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전기회로의 프린트 기판의 배선이나 집적회로 등 전기회로망과 통신망의 문제, 물자의 수송 등 조업도 조사, 컴퓨터 프로그램 이론, 부호이론 등입니다. 에르되시는 1951년 여러 편의 정수론 분야 논문으로 미국수학학회에서 코레상을 1948년에는 울프상을 수상했습니다.
에르되시의 영향과 의의
폴 에르되시는 함수론, 기하학, 정수론 등 수학의 전 분야에 걸쳐 1,500편에 달하는 논문을 남긴 20세기를 대표하는 수학자입니다. 동료 수학자들과 협력을 통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정말로 수학을 사랑하고 수학 연구에만 몰두하던 괴짜 수학자 에르되시는 오늘날 협력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며 수학을 공부하는 미래의 인재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폴 에르되시의 좌우명을 끝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다른 지붕 밑에서는 다른 증명을
another roof, another p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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